얹그제 국가대항축구시합(A-매치)이 있었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대표 가나와의 평가전이었는데, 조광래감독은 은퇴한 박지성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누구로 하느냐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박지성은 한국팀의 주장이며 리더이며 운동장에서는 올라운드플레이어로 팀에 대한 기여도는 어느 선수보다 혁혁한 선수인데
그를 대신할 차세대 한국축구의 리더를 누구로 택하느냐에 감독의 고민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같이 어느 조직에서 중요한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는 그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 갈 자격을 갖춘 능력자가 있어야 한다.
또 모든 조직원들 역시 그 역할에 맞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자신의 특성과 자질에 맞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그 조직은 삐거덕 거리게 된다.
함량미달의 인물이 과분하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 그 조직의 역량이 뒤떨어진다.
나의 능력에 합당한 적절한 자리에 내가 들어가야 나 자신은 물론 조직에게도 득이 된다.
과분한 자리,왠지 어색한 자리,불편한 자리,곤란한 자리는 피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자리,최적의 자리를 “명당(明堂)”이라고 한다.
좋은 묘자리를 구하거나 중요한 건물,수도를 정할 때 예로부터 풍수지리에 따라 용(龍),혈(穴),사(砂),수(水)(향(向))를 보아 가장 좋은 “자리”를 정했다.
기(氣)가 살아있고 바람이 잘 통하며 물이 고이거나 지하에 수맥이 흐르지 않으며 경사가 급하지 않은 곳을 명당으로 쳤다.
우리 병원이 있는 이곳 “서초구(瑞草區)”도 “서초”가 “서리풀”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서울에서 가장 명당 중에 하나로 치는 것 같다.
“상스러운 풀”,즉 “벼”가 자라는 서울의 입구,말죽거리(양재역(良才驛))가 있고 지금은 법조타운과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로 명당임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서초구는 사시사철 바람이 잘 통하고 물이 고이거나 넘치지 않고 지대가 약간 높아 살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인체내에도 명당이 있다.
“간”은 우측 횡격막아래 위치하여 창자로부터 오는 영양분을 받아 드리고 위에서 넘어가는 음식물의 소화액을 분비하고
몸에 필요한 포도당과 각종 물질을 만들어 바로 심장으로 보내는 중요한 자리에 있다.
낫모양의 견고한 인대로 늑골과 복벽으로 안전하게 보호되어 조용하게 생화학공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우리 인체의 가장 중요한 호르몬의 생산과 조절을 하는 “샘(腺,gland)"들의 위치를 보면
과연 명당중에 최고의 안전한 명당에 이들 샘들이 자리함을 알 수 있다.

호르몬의 중앙본부인 “뇌하수체”는 문자 그대로 뇌 속에서도 가장 깊숙이 “아래”(뇌하)에 위치한다.
1cm남짓한 크기의 완두콩 모양의 이 샘은 우리 인체의 에너지대사(갑상선),성장,생산,각종 스트레스 담당(코티솔)은 물론 소변배출에 이르기까지 총지휘를 한다.
아마 인체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부신피질호르몬” 역시 매우 중요한데,콩팥의 위에 얹혀있고 이 역시 매우 안전하게 자리하고 있다.
혈압조절과 스트레스에 적응하는 호르몬을 방출한다.
또 당뇨병을 예방하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역시 복부 깊이 위장의 바로 뒤에 위치한다.
침묵의 장기라 해서 암이 늦게 발견된다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어 피속에 있는 당을 간이나 근육 속으로 보내 혈당을 조절하는데,
췌장은 우리 인체의 음식물 소화에도 지대한 역할을 한다.

우스개소리로 교실에도 “명당”이 있다고 한다.
키 큰 학생 뒷자리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 좌우,뒷자리가 그렇단다.
키 큰 아이 뒤는 졸아도 잘 들키지 않고 성적 좋은 아이 근처는 시험치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요긴하다고 한다.

필자는 휴일이나 일요일 틈틈이 병원을 지킨다.
이 “자리”가 바로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어색한 것은 아닌지...남들이 볼 때 과분하거나 불편해뵈지는 않은지..늘 염려가 된다.
서울에서 내가 있는 이 자리는 과연 “명당”인지...서울시민에게 최적의 자리값을 하고는 있는지...
사람들이 바라는 바대로 제대로 자리값을 하고는 있는지....
쓸데없이 허세와 자가당착으로 소중한 이 자리를 욕보이지는 않는지....필자는 늘 노심초사 좌불안석이다.

얼마전에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다가 요절한 신부님의 이야기로 장안이 숙연했던 적이 있다.
필자의 고교후배로 동창회에서는 이 동창신부의 위대한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모교에 동상이라도 하나 만들기로 했다.
그가 있던 작열하는 검은 땅, 그 곳이 그가 가장 사랑했던 곳이고 그가 가장 성스럽게 여겨졌던 그의 “자리”였던 것 같다.
아마 지금의 내 병원원장자리에 있으라면 그는 한마디로 거절했을 것이다.
그의 자리와 나의 자리...너무도 “자리”가 다르다.
필자의 진료실에는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쳐”박사의 생전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내가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사랑하고 존경했던 선배이자 스승이셨던 슈바이쳐박사 역시 음악가로 철학자로,목사로 모든 영예와 세속적 행복을 박차고
적도 아프리카에서 “문화철학”과 “파이프오르간”만을 연구하며
오직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원한 의사로서 그의 장년기와 노년기를 오고웨강을 보며,람바레네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가 있던 곳은 마치 우리 인체의 뇌하수체처럼,
지구의 사랑의 호르몬 총사령부와 같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설익고 원시적인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무려 그의 탄생 100주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달되어
한국의 슈바이쳐인 후배 신부님에 의해 전세계로 다시 전파하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