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하루도 맘 편히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젊은 여자들의 핸드백 속에는 적어도 한개의 손거울은 들어 있다.
예쁘지고픈 여자의 본능을 위해 거울은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거울은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쳐준다.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며 우울해 있기도 한 내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거울을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내자신을 들여다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허영심으로 차 있거나 욕망으로 얼굴빛이 흐려져 있다면 거울 보는 일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내가 거짓으로 위장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면 가끔 거울을 보라.
거울 속의 나는 참으로 초라할 것이다.
상사의 눈치만 보고 비굴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거울을 보라.
그 속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포장된 젊은이가 또렷이 보일 것이다.
거울은 숨어있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거울을 쳐다보며 두손을 불끈 쥐어 보라.
거울은 자신의 가능성,잠재력을 조심스럽게 찾게 해 줄것이다.
미당 서정주(1915~2000)의 "국화 옆에서"를 보면,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대목이 나온다.
거울은 나의 지나온 세월을 기억해 주고 조용히 속삭여 주는 지혜로운 자와 같다.
"그래... 나도 소쩍새 우는 봄부터 쉴새없이 달려왔었지....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며 국화꽃처럼,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이쯤에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대견해 해보자..."
거울은 그래서 말없는 스승과도 같다.
그리스신화에 연못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도취하여 스스로 물에 몸을 던진 "나르시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울은 스스로를 자아도취에 빠뜨리기도 하고 자기최면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래 내가 최고야! 어디에 나같은 존재가 있을까?...."
거울이 아니면 이같은 환상의 세계를 제공해줄 도구가 어디 있으랴.....
물론 거울은 화장끼 없는 민낯,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냉정한 물건이기도 하다.
내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있는 몹쓸 놈이기도 한 것이다.
거울은 내가 스스럼 없이 훌훌 벗고 내 벌거벗은 몸을 비쳐줄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어느날 밤에 무심코 거울을 본 나는 그 곳에 "내 엄마"가 나를 노려보고 있음에 놀란다.
거울은 세월을 가르쳐 준다.
내가 그토록 대들었던 "아버지"의 늙은 모습이 나타나는 곳, 역시 거울이다.
"아...나도 이제 아버지가 걸어갔던 그 길로 가는 구나....나는 아버지였구나. 내 속에 아버지가 들어 있구나..."
거울은 DNA의 불변함을 고스란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끔 거울을 남에게 잘못 비추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에게 거울을 두고 대하거나 자신 앞에 거울을 두고 상대방이 나를 보도록 하는 사람이다.
"투사(Projection)"가 그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깜쪽같이 속이고 마치 투명인간처럼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정신적인 반응기제인데,
만약 외래에 이같은 투사에 익숙한 환자가 오면 우리 의사들은 곤혹스러워 한다.
스스로의 문제를 진실하게 대처하려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의사가 되려 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3-3 훈련법"이란걸 제시하고 싶다.
일년에 "3일"만 "3분간" 뚫어져라 거울을 응시해보자는 것인데,
거울 속의 나,위선적이지 않고 꾸미지 않은 naked한 나의 모습을 쳐다보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 온길,나의 지금 모습, 앞으로의 나의 장래...등에 한번 냉철하게 현실적으로 거울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제대로 확인해 보는 기회이다.
반성의 기회일 수도 있고 점검의 시간이기도 하고 재충전의 찬스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생활에 쫓기더라도 일년에 3번, 3분 씩 스스로를 돌아다 보는 시간,거울을 보는 시간은 매우 유익하리라 본다.
우리는 "백미러"를 통해 내 뒤의 군상들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인간은 정면을 향해서는 뒤를 볼 수 없다. 거울로 내 뒤를 확인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거울을 보는 동물이 아마 인간 이외에 또 있을까....
나와 내 뒤를 샅샅이 챙겨주는 거울, 그래서 거울은 나의 현주소를 정확히 제시해주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다.
아무리 화가 나고 기분이 상해도 "거울을 부수어서"는 안된다.
고흐의 자화상이나 렘브란트의 유명한 자화상처럼 나의 자화상을 수시로 그려볼 수 있는 것이 거울이기 때문이다.
만약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같이 진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확인하고 위로 받고 다짐을 하는
또 하나의 나를 늘상 대하는 곳이 거울 속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