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환자가 오면 우선 무슨 질병을 갖고 있을까,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가능하면 깔끔하게 환자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텐데,
이 환자는 근본적으로 철저히 검사하고 치료하러 왔는지 아니면
큰 병원이나 다른 병원에 가기로 하고 잠시 나의 의견을 들어보려 왔는지,
우선 응급치료하러 왔는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제대로 해결하러 왔는지,
성격이 인내력있고 의사의 말을 잘 듣는 타입인지 아니면 급하고 의심이 많고 날카로운지 등등
짧은 만남의 시간동안 많은 것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가끔 환자가 유명하거나 인기인인 경우는 또 다른 사정이 생긴다.
이를테면 이름이 잘 알려진 탈렌트나 정치인, 회사CEO 와 같은 유명인사일 경우
몇가지 보통 환자와는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우선 환자는 자신의 병이 남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특히 좀 부끄러운 곳의 병일 때), 가능하면 조용히 신속하게
질병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좀 표현하기 어렵지만 의사에겐 거북하기가 쉽고 그저 보통사람처럼
편하게 치료에 임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소위 "VIP syndrome"이라고 해서
괜히 팔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치료결과가 안좋을 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잘 아는 사람(가족이나 친구,애인등)의 집도를 않는게 좋다는 것이 바로 이 VIP증후군 때문이다.
유명인사도 자칫 너무 잘해주려다 보면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생긴다거나 하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그 환자 역시 당시 엄청 유명한 인물이어서 우리 병원에 왔을 때
그 미모하며 몸매하며 대단했었는데, 외과적질환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그 탈렌트가 나오는 연속방송극이 TV 화면에 나올 때는 서울시내가
조용했을 정도였으니 인기가 어느정도 였는지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환자는 얼굴도 예뻤지만 표정하며 말하는 태도, 목소리 모두가 톱탈렌트가
이래서 톱을 하구나 할 정도로 주치의인 나도 당황할 정도였었다.

흔히 인기인이라고 하면 다소 튀고 오만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지만
이 여자배우는 극에서 보는 그 모습을 병실에서 100%로 재현하고 있었다.
수술을 하고나면 수술부위가 아파서 옷매무새가 좀 흐트러지기도 하고
화장이 지워진 맨 얼굴을 주저치 않고 보여 줄 수도있을텐데  그런 구석이 전혀 없었고,
늘상 힘들지 않느냐, 수고해줘서 고맙다하는 인삿말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참 잘 갖춰진 배우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고 그 환자가 퇴원 한 뒤 다시 TV화면에
나왔을 때 나는 찬찬히 그 배우의 연기를 보고 많은 좋은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또 다른 유명 여자배우를 진료할 기회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저번과는 전혀 달랐다.
내 앞에서 엄마와 싸우질 않나, 말도 그냥 쉽게하는, 전형적인 톱탈렌트의 다소 튀는 모습 그대로 였다.
다행히 급성충수염(맹장염)이 아니라는 판명이 나와 수술없이 퇴원하였지만,
그 후로 나는 그 배우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왠지 화면 속에서만 저렇지
실제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유명인라면 어딜 가나 겸손하고 대중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인품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기억은 거꾸로 우리 의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 될 거라고 생각해 본다.
외래에서 인자하게 환자를 대하는 그 모습과 태도를 어딜 가나 잊지 말아야 함을 나는 늘 생각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