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인간이 창조한 가장 고귀한 유산 중에 하나이다.

詩는 비록 글자로서 나열하는 평면예술이지만, 색채와 음향과 율동이
생동감있게 묘사되는 3차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나 산문에
비하여 간결하고 함축되고 절제되어 글자 하나에 수 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은유적이거나 비유적으로 표현하므로 인간의 내재되어있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그려 낼 수도 있어 그 어떤 장르의 문학보다 우리 인간과 가깝고 친숙하다.

일제강점기에 조국을 빼앗긴 설움을 가장 절실하게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詩였다.

윤동주(尹東柱)(1917~1945)는 이 시기의 우리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의 유명한 詩 "별 헤는 밤"은 지금 보아도 감동과 전율을 일으켜 주기에 충분하다.

"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憧憬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어머니//
어머님,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中略..)..//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그는 해방을 못 보고 45년 겨울이 끝나는 날 일본에서 옥사했다. 그의 이 작품은
훗날 유작으로 발표되었고, 그 중에 "서시" 역시 영원히 우리 민족의 가슴에 새겨질 명작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야 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조국을 잃은 민족의 수치심 앞에서, 그러나 일제에 저항하고 순수함과 정직함을
잃지 않고 고독과 절망감을 이런 아름다운 詩語로 승화시킨 윤동주는 비록 28세에 요절했지만
영원히 우리 민족의 혼으로 남을 것이다. 그의 "또다른 고향"을 보면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여겼는지, 그리고 그런 자신을 어떻게 위로하고 다짐을 하였는지 알 수 가 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었다/어둔 房은 우주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어둠 속에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백골이 우는 것이냐/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어둠을 짖는 개는/나를 쫓는 것일게다/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백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그의 유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한민족의 불멸의 시작품으로 후세에 널리 남으리라.

윤동주보다 앞서서 우리에겐 서정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진달래 꽃"을 쓴
"김소월(정식)(1902~1934)이 있다. 그의 이 작품 역시 너무도 유명하고
지금 다시 읽어도 서정시의 극치를 맛볼 수 있으리라.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 오리다/영변에 약산/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 오리다/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 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오리다"

김소월이 여성적이고 감성적이며 소극적이라면 윤동주는 강인하고 남성적이며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詩는 詩 言語를 통하여 작가의 심성과 내면의 세계를 고스란히 느끼고 교감하며
그가 감당하는 詩의 세계로 독자들도 몰입하게 해주는 독특한 예술이다.
詩는 그래서 우리 병든 영혼을 고치고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치료제요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는 거름과도 같다. 詩語는 한자 한자 캡슐처럼 심적 고통을 진정시키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예방해주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을 방출시켜주는 호르몬 유도제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서정시를 들라면 "청록파(靑鹿派)" 시인,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의 주옥같은 시들을
빠뜨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박목월(朴木月)"은 "구름에 달 가듯이('46년)"나
"윤사월(閏四月)"('46년)이란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낯 익은 시인이다.

"강나루 건너서/밀 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한국의 시는 박목월을 통해 여유와 사색을 얻었다고 한다. 동양화처럼 철저히 절제된
언어로 압축하고 함축시켜 아름다운 여백의 미를 창출하였다고 한다. 사실 그도 윤동주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1916~1978). 그러나 똑 같은 일제하의 울분과 절망감을
표현한 詩인데도 독자에겐 또 다른 뉴앙스로 다가온다.

"송화(松花)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 사/문설주에 귀 대고/엿 듣고 있다"
 
어느 시골 산촌의 고고한 하루, 외롭고 힘든 여인을 통해 마치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다리듯
外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 민족의 고달픈 심정을 잔잔한 필체로 묘사한 秀作이다.

이렇듯 詩는 직설적이 아닌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가슴 속에 잔뜩 쌓인 恨과
설움,고뇌를 훌훌 털어내는 카타르시스적인 도구로서 가장 적절한 媒體라고 본다.

詩를 통해 우리는 인내와 용서의 미덕을 기를 수도, 詩를 통해 못 가진 것,못 해본 것을
간접경험할 수도 있으며, 詩를 통해 이루지 못했던 사랑, 원망, 절망의 슬픔에서 승화하여
또 다른 세계로의 도피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詩는 각박한 현실세계에서 귀중한 완충작용
(buffer action)을 해주므로서 미래에 대한 희망,고통의 완화를 선사받을 수 있게 해준다.

오늘 당장 고통과 절망감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서점으로 달려가 좋은 詩集 한 권을
사기를 권한다. 그리고 맘에 드는 詩를 몇 수 읽어 보자. 한결 답답한 심정이 줄어들 것이다.
너무 현실에 얽매여 미래를 잊고 사는 사람들, 나날이 불안과 고통만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싯귀 하나가 충분히 마음의 평온과 육체의 건강을 가져다 주리라고 필자는 믿는다.

윤동주의 "자화상(自畵像)"의 일부를 읽으면서 끝을 맺고자 한다.

"산모퉁이를 돌아/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미워져 돌아 갑니다/...가엾어 집니다..../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다시...미워져 돌아 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그리워집니다"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 봅시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가 다시 보면 그리워 집니다.
결코 자신의 모습이 미울 수가 없는 것이지요.

......스스로를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