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세째주 목요일이면 전세계적으로 포도주마니아가 손꼽아 기다리는
"보졸레누보(Beaujolais Nouveau)"가 출시된다. 그런데 올해 한국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백화점마다 산더미처럼 전시된 보졸레누보의 매출은 격감하고
올해 처음 선보인 "막거리누보"가 선풍적인 인기로 팔려 나간 것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팔린 막걸리누보는 대충 1,052병인데
비해 보졸레누보는 230병이 팔렸으며, 신세계백화점(본점,강남점,영등포점)에서도
16일부터 22일까지 막걸리가 4,450병/ 보졸레가240병으로 무려 20배의 판매차이를
보이는 대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막걸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술이었다. 논밭에서 일을 하고
낮참으로 텁텁한 막걸리 한사발에 된장 찍은 고추 한개를 와싹 씹는 맛이 제대로 된
막걸리의 맛이었다. 막걸리는 시골 여느집에서도 손쉽게 담글 수 있는 술이었다.
쌀을 쪄서 말린 다음, 고두밥에다 밀누룩과 물로 발효시킨 것이 막걸리, 또는 탁주(濁酒),
또는 농주(農酒)였다. 막 걸러서 마시면 된다고 하여 나온 막걸리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술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막걸리누보는 햇쌀로 빚은 그해의 신선한 술로
탁쏘는 탄산수의 맛이 가미되어 젊은사람들에 인기라고 한다.
술은 알코홀이 주성분으로 간에서 분해된다. 지나친 음주는 혈중 아세트알데하이드의 농도를
높여 숙취를 초래하고 누적된 알코홀은 간에서 지방으로 축적되어 지방간을 초래한다.
그러나 소량의 알코홀은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혈압도 떨어뜨려 주며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막걸리가 갑자기 인기를 얻게된 것은 최근의 웰빙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왜냐면 막걸리는 발효주이기 때문에 술 속에 풍부한 비타민(B등)과 양질의 단백질, 그리고
엄청난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들어있다. 막걸리 한병에 우리가 자주 마시는 요구르트
100병의 유산균이 들어있고 섬유소음료의 100~1,000배의 식이섬유가 들어있다고 한다.
필자의 군의관시절, 포천에서 마신 "포천이동막걸리"의 걸죽하고 진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서울막걸리"가 톡쏘고 신선한 느낌이라면 이동막걸리는 한국 전통의
막걸리 본래의 탁주맛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막걸리가 가져다 주는 이득은 많은 것 같다.
쌀소비의 출구를 마련하는데 일조를 하며, 와인이나 위스키에 비해서 알콜도수(6~7%)는
낮고 (와인=13%정도,위스키=43%, 참고로 소주=약 25%, 맥주=약5%..), 열량 역시
적어서 (46kcal/100ml; 참고로 와인=70~74kcal, 소주=141kcal, 위스키=250kcal/100ml)
술에 약한 한국인 (술을 해독하는 ALDH2효소가 한국인에게는 약하거나 부족하여 술에 잘 취하고
빨리 깨지 못함)에게 좋고 "술살"(술을 많이 마시면 비만과 지방간의 원인)염려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막걸리를 사발에 담아 호리병박으로 퍼 마시며 갓 뜯은 속살 깊은 배춧속을 된장에 찍어
씹는 맛은 항상 그립다. 동동주라면 더 좋고 약간 서늘한 곳에서 익힌 막걸리라면 제격이다.
여기다 도토리묵이나 파전을 곁들인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얼굴에 취기가 오르면 "이태백(李太白;701~762)"의 "月下獨酌"(달 아래 혼자 마시며)을
저절로 읊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一樽齊死生(일준제사생/술이 있으면 삶과 죽음을 논할 것인가)
醉後失天地(취후설천지/취하면 천지도 분간 못하네)
兀然就孤枕(올연취고침/혼자 쓰러져 잠에 빠지면)
不知有吾身(부지유오신/내가 내몸을 모르니)
此樂最爲甚(차락최위심/이런 즐거움은 으뜸이로고)"
그래서 "두주불사(斗酒不辭)"라고 했던가, "청탁불문(淸濁不問)이라고 했던가....
말술도 마다않고,청주던 막걸리던 술이라면 거절않겠다는 애주가들의 상용어이다.
그러나 애주가라면 꼭 당부할 것들이 있다. 술을 마시되 술이 마셔서는 안되다는 것이 그것이고
술로 즐거워하던지 술로 슬픔을 잊어야지 술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잠시 피하는 의지(의존성)를
구하면 안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술을 강요하는 사회, 술실력을 벼슬처럼 과시하는 술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의 주량의 8부를 넘지 말고 술로 인해 낭패를 본 사람이라면 술을
독약같이 생각해야 좋다.
술은 친구와 같다. 너무 가까이 하면 술이 나를 업신 여기게 되고 너무 멀리하면 섭섭하게 된다.
친구는 늘 가까이 하되 우정으로 대해야지 수족처럼 부려서는 곤란하다. 술은 귀한 친구처럼
항상 우리 인간에게 신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다시 李白의 "장진주(將進酒)"를 읊어 보자.
"朝如靑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아침에 검었던 머리카락이 저녁에 벌써 눈처럼 희어졌네,
會須一飮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마신다면 당연히 삼백잔은 해야지,
將進酒君莫停(장진주군막정)/한잔 하려하니 제발 막지 말아주오"
술과 달을 사랑했던 이태백, 거기다 동동주까지 곁들인다면 비록 관직에서는 쫓겨나 벼슬에서는
멀어졌지만 그래도 술과 달이 있어 인생은 살만하다고 했을 주(酒)태백이 다시 살아와 아마
막걸리누보를 제일 먼저 예약하리라고 웃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