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나는 막 군의관을 마치고 외과의사로서 청운의 꿈을 안고 충남 천안으로 내려갔다.
당시 천안은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 되기 전으로 병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1개의 대학병원과
중소병원들로 천안과 인근  입장,진천,연기등지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정도였다.
대학병원 의국(백병원)의 소개로 천안의료원 외과과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의료원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신축공사가 채 끝나지 않아 입구는 공사 흙으로 범벅이 되기 일 수 였다.

원래 천안은 충남의 동북부의 교통의 요지로 그 유명한 청룡동의 천안삼거리는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뉘는 분기점 (현재 삼거리공원이 있음)이 있고 천안은 경부선과 장항선이 교차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차령산맥이 지나는 천안의 태조봉에는 동양최대의 좌불상이 있는가 하면, 병천면에는 유관순열사
유적지가 있고,목천읍에는 독립기념관이 있는 우리 민족의 정기가 고스란히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구 54만에 달하는 구가 두개나 있는 제법 큰 도시지만 당시(1988년)만 해도 유명하긴 해도
시골의 작은 도시였다.

잘 알려진 일화가 있는데 천안택시기사가 세계에서 제일 운전기술이 뛰어나다(?)는 말이 있다.
그 좁은 천안시내를 시속 60km가 넘는 속도로 잘도 곡예운전을 한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 천안시장에서
쌩쌩거리는 택시를 보고 충청도사람 느리다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천안하면 기억나는 것은 호서대다.
원래 1978년 천원공전으로 시작했는데, 1988년 종합대학으로 발전하면서 천안의 중요한 교육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당시 총장이 우리 의국 선배여서 유난히 관심이 갔었다.

천안의료원에 봉직하면서 나는 암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위암, 유방암, 직장암..등등 그 당시 의료원
(과거의 "도립병원") 수준으로는 감히 엄두를 내기도 쉽지않은 그런 암수술을 용감하게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술결과는 좋아 모두 건강하게 회복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부터였다. 의료원에서 서울출신의
젊고 잘 생긴 (?당시 내 나이 37세) 외과의사가 암수술을 곧잘한다는 소문이 천안시내에 퍼지기 시작한 모양인데,
한명 두명 찾던 암환자가 줄줄이 우리 의료원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아침에 진료실에 도착해 보면
이미 여러명의 암환자와 그 가족들이 진료실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외과의사는 나 혼자 였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암수술과 수술후 치료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2~3명의 외과의사가 있어야 한다. 나는 젊은 혈기에
나중에 들어닥칠 여러문제들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나는 이 당시 일년내내 출근하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었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그래서 일요일 외식은 가족들을 천안에 불러다
천안시내에서 했을 정도였다. 병실은 우리 외과환자로 넘쳐나고 (의료원 설립이래로 이렇게 외과환자가
많았던 적이 없었다 함) 심지어는 인근 대학병원(D대부속병원)에 입원해 있던 직장암환자까지
야밤 도주해서 우리병원에 오기까지 했으니 급기야는 환자 속에 파묻혀 나의 개인생활은 물론 나의 건강마저
위협을 받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때 입원실에서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병원공사가 덜 끝난 상태이고 충청남도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보니 제때 돈이 돌아가지 않는지 입원실에 커튼이 없어 햇볕을 피해 아침에 회진을 하면
환자가 동쪽으로 몰려있고 오후에 가보면 서쪽으로 모여있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수차 총무과에 부탁해도 커튼은 달아지지 않았다. 할수없이 내가 직접 천안시장 옷감가게에 가서
원단을 가져와 직접 커튼을 달았는데, 이를 옆에서 보다 못한 환자들이 거들고 보호자들의 협조로 아침저녁
침대를 이리저리 옮기는 웃지못할 희극은 막을 내렸으나 나는 그 후로 직원들을 별로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나는 그일을 겪고 난 뒤, 국가나 시도가 운영하는 병원의 직원들의 근무태만에 대해 매우 실망했을 뿐 아니라,
약구입에 따른 알력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즉, 제약회사로부터 소위 리베이트니 뭐니 해서 총무과에서
매달 얼마씩 챙기는 눈치였는데, 내가 나서서 직접 외과로 가져오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그렇게 해서 받은
음성적인 불법수입(?)을 직원회식에 전액 희사하였다. 이 일로 나는 직원들에게 인기 급상승했으나
당시 의료원의 총무과장(부장?)으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1년만에 의료원을
그만 두고 말았다. (의국에서는 수련의를 교대로 파견 보낸다, 김과장이 빨리 원장이 되도록 도지사에게
부탁하겠다고 했지만) 의료원을 퇴직 한 뒤, 당시의 천안시내에 의료원 외과과장이름이 깨나 알려졌는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인근 준종합병원으로부터 심심찮게 초빙연락이 오곤했다.

천안하면 호두가 생각나는데 병원이 있던 봉명동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그 당시 할머니가 운영하던 호두집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가끔 호두맛을 보곤 했다. 그리고 인근 공주계룡산과 동학사는 주말 등산코스로
안성맞춤 이었고 낮에 찾는 천안이박사냉면집에서 먹는 시원한 여름냉면은 지금도 군침을 돌게했는데,
얼마전에 양재역에도 무슨 이박사집이 생겨서 가보니 천안에서 먹던 그런 양많고 시원한 그 맛에는 못미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