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80세대 이다.

    70년대 초에 대학에 들어가 80년대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80년대 끝날무렵 사회에 진출한 세대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그래서 진료기록지는 물론 수술기록지,각종 진단서,등 모두 수기로 작성하였다.
    흔히들 우리 세대를 "서기"세대라 한다.
    병원에서 하루종일 수기작업으로 엄청난 시간을 보내었으니 우리들을 "서기"라 부를 만 했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즉 달필은 근무성적에 중요한 역할도 했다.
    한때 내가 쓴 수술지,차트가 전설처럼(?) 의국에서 회자되었다고 할 정도였다.(확인한 바는 없으나...)
    특히 간호사들은 잘 알아볼 수있도록 잘 기록하는 사람들이 늘 칭송을 받았다.
   
    당연히 그때는 로보트니 AI(왓슨)니 하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으니, 수술도 모두 수기로
    직접 하나하나 다 수작업으로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손솜씨(흔히들 바느질 솜씨라고..)가 좋고 손놀림이 빠른 외과의사가 최고 인기였다.
    요즘처럼 로봇수술이나 복강경수술이 흔한 때였으면 손재주가 그때만큼 높이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들어 앞으로 수십년내에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AI가 대신할 수 있는 단순정신노동이나 공장의 자동화 및 가게에서의 자동결제시스템으로
    대체 가능한 업종들이다.
    우리 외과도 상당부분 직접 손으로 하는 수술에서 기계로 하는 수술로 바뀌었다.
    여기서 수작업은 소위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 노동이다.

    아날로그란 디지탈과 달라 연속성을 주특징으로 한다.
    노하우의 연속성,테크니크의 연속성,순간순간 대처할 능력들은 연속성, 즉 많은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요구한다.
    아무리 디지탈시대로, AI시대로 가는 것이 대세라고 해도 외과분야만은 그래도 아나로그적인 요소가 쉬 없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쌍커풀 수술을 로봇이 할 수 있을까?
    복잡하게 다친 살속의 손상을 순간순간 로봇이 잘 판단하여 수술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앞으로 갈수록 , 디지탈이 대세가 될수록, 아날로그적인 치료법은 더욱더 그 가치가 상승하리라 생각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글쓰는 게 옛날사람들에 비해 서툴다.
    대신 PC사용은 훨씬 나을 것이다.
    아날로그는 느리고 시간이 많이 든다.
    디지탈은 초보자라도 버튼 하나 눌러 금방 할수 있다.

  이 아날로그는 결국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 가치와 필요성은 지속하리라 본다.

  나는 요즘 환자들이 치료를 매우 손쉬운 것으로 여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디지탈문화에 익숙한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디지탈은 즉각적이고 빠르고 간단하고 뚜렷하고 별 노력없이 쉽게 접근 가능하다.
  아날로그는 그 반대다.

  나이가들 수록 이 아날로그적 치료방식은 그 노하우가 축적되어 점점 더 효력을 발휘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아날로그의 성향을 잊고 있어 좀처럼 아날로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아날로그적 치료방식은 나이 든 의사가 하기에 적합하다.
  노령의 의사가 그나마 젊은 의사보다 나은 것은 이 아날로그적인 부분이다.

    아날로그는 연속적이어야 한다.
  수십년간 쌓아온 지식과 손놀림,판단들이 날이 갈수록 그 가치를 더해가는 것이 아날로그의 본성이다.
  아날로그는 하루아침에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다.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와 끊임없는 통찰과 반복적인 실습등을 통해 그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은퇴하고 하던 일을 그만둔다.
    직장에 되돌아만 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뛰어난 지식과 경험을 보여줄 수 있을텐데...
    이런 노년의 고뇌를 씻어줄 것이 바로 아날로그적인 접근이다.
    디지탈로 할 수 없는,디지탈이 감히 접근 못할,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경험과 지식과 노하우의 축적과 같은 아날로그적인 접근만이 가능할 것이다.

  아날로그는 디지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아날로그는 감성을 바탕으로 하고 기나긴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아날로그는 일에 대한 사랑과 애착, 멀리는 동경,희망..과 같은 인간의 순수한 감정에 뿌리를 둔다.
  아날로그는 오랜시간의 노력과 애착,사랑의 결실을 추구한다.
  인류는 수십만년의 원시적 생활에서 오늘날 현대인이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한 발전을 아날로그로 표현하였다.
  디지탈은 그 축소판이긴 하지만 생생한 인류의 역사는 아날로그만이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아날로그는 앞으로 또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그날까지 수많은 노력과 땀으로서 발전하고 새로운 역사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압축하면 디지탈이 되겠지만 그 발자취를 제대로 느끼려면 아날로그여만 가능한 것이다.

  아날로그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고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