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일요당직을 서고 있는데, 젊은 여자가 사색이 다되어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안고
진료실을 박차고 들어왔다. 엄마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숨을 헐뜩이는 것을 봐서
곧장 달려서 온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나는 포대기를 벗기면서, "무슨 일이죠? 애기가 아파요?"라고
물으면서 아기를 보았는데, 얼굴색은 이미 파랗다 못해 검게 변하고 사지는 축 늘어져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대개 외래에 도착 당시 사망한 사람 (DOA;Dead On Arrival)이 오면 바로 응급실로 보내어
응급소생술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시행하는데, 당시 이 병원은 규모가
크지 않아 당직과장이 작은 응급실까지 도맡아 응급환자를 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 응급소생술을 시행하려면 적어도 3~4명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기도확보,심장마사지,혈관확보...등등 짧은 시간안에 여러가지 생명구출에 필수적인 의료행위를
해야하는 응급실에서도 가장 긴급을 요하는 시술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 곳은 중소도시라 대학병원도 먼 곳에 있고 그 곳에 가는 사이에
이미 (거의) 죽어있는 애기에게는 확실히 죽게 만드는 비인도적인 처사일 수 밖에 없다.

아기는 태어난 지 겨우 2~3주 밖에 되지 않았고 그 날 오전까지 잘 놀던 아이였다.
애기가 배고픈지 하도 보채어 좀 많이 먹였는데 아무래도 애기의 표정이나 팔다리 모양이
심상치 않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애기엄마가 급하게 내가 당직을 서고 있는 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 온것이었다. 순간 나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수초를 망설였던 나는 내 특유의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즉시 이 아기를 살려보기로 작심했다.
우선 배를 보니 빵빵하게 부어 있었는데, 나는 위(stomach)가 급격히 팽창하여 횡격막을 누르고
호흡이 힘든 상태까지 빠졌다고 결론을 내리고 ,L-tube를 코를 통해 위속으로 넣어 풍선같이
터질 것 같은 위내용물을 밖으로 배출시켰다. 가스와 젖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금방 배가 홀쭉해졌는데, 애기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나는 즉시 인공호흡과 심장마사지를 했다.
내가 그렇게 작은 입술과 뽀뽀(?)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천우신조로 애기는 울음을 터뜨리고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고 얼굴색은 빨갛게 되돌아왔다.
애기가 죽다가, 아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인체는 대개 5분정도만 심장이 멎으면 뇌부터 사망(Brain death)하기 시작한다.
회복이 된다해도 뇌세포의 손상은 자칫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다.
다행히 이 애기는 아직 어려서인지 금방 회복되었는데, 나중에 검사 결과 "선천성비후성유문협착증"으로
진단이 나왔고 이것은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막히는 것으로 수술이 필요한 질병이다.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훗날  전해 들었다.
그날 진료실에서의 그 30분간은 나에게는 물론 이 애기와 애기엄마에겐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시간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