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의 병동은 80년대 탤런트 박상원이 주연 장총찬역을 해서
유명한 작가 김홍신의 인간시장을 방불한다. 온갖 직업의 전국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로 늘  붐빈다. 수술한 사람, 주사 맞으러 온
사람, 검사하러 온 사람,뼈가 부러져 누운 사람, 애기 낳으러 온 사람,
폐렴으로 호흡이 어려운 사람,심한 설사로 탈수에 걸린 사람, 정신이
분열되어 횡설수설하는 사람.....들로 병실은 꽉 찬다.
또 병동은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다 지쳐 잠깐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고,
사업하느라 혹사하여 며칠 도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니면 싸움에
패하여 재충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80년 초 어느날 저녁 인턴숙소에 무슨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인턴 한 명이 숙소에 올라와 그만 붉게 물든 얼굴을 파묻고 깊은 침묵
속에 빠진 사건인데, 병동의 어떤 입원환자에 의해 발단이 되었다.
간호사들이 일하는 프런트에 있던 L선생이 모간호사에게 막말을 하는
환자보호자에게 "왜 말을 함부로 하느냐?"고 한마디 한 것이 이 사건의
시작이 되었다. 인턴으로부터 핀잔을 받은 보호자는 화를 내며 L선생을
병실로 불러 그만 꿇어앉히고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건방지다는 이유였다.
환자보호자가 의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 당시로는 드문 일이었는데,
알고보니 그 병실에 당시에 이름께나 알려진 S씨(유명한 명동 사보이
호텔 사건 당사자)가 입원중 이었고, 조직의 두목을 지키던 부하 한명이
맘에 안드는 간호사에게 좀 심한 말을 한것을 본 L선생이 그 부하에게
꾸중 한 것이 그만 이같은 끔찍한 폭력사건으로 커진 것이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필자는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 병실로
전화하여 당장 인턴숙소에 올라와 L선생에게 사과하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전혀 반성은 물론 대꾸 한마디 없었다. 참다못해 그날 저녁에
급기야는 D일보 사회부기자에게 연락하여 병원내 의사폭력사건을
기사화해달라고 했고, 그 사실을 그들에게 통보하였다. 그러자 사건의
중요성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는지 그날 밤에 당사자들이 숙소에 올라 와
진지하게 사과하고 잘못을 빌어 이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L선생은 어쩐 일인지 우리 병원에서 잘 보이지를
않고 훗날 알게된 일이지만 다시 대학으로 들어가 오늘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날 그 사건의 당사자는 지난 1975년 명동에서 벌어진 끔찍한 조직폭력
세력들간의 사건에 연루된 바로 그 사람이었다. S씨로 알려진 그는
우리나라 주먹세계에서는 마지막 낭만파였고 신사로 대접받았었는데,
잘 아는 J씨파의 기습사건으로 명동지배를 마감하고 조직세계에서
한걸음 물러난 상태였다. 우리나라 조폭의 역사는 일제시대,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김좌진 장군의 후손,김두한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우미관을 중심으로 한 김두한파가 당시 18세의 나이로 주먹세계를 재패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원래 명동파 이화룡의 행동대장이었던 S씨는 57년 국내최초로
세워진 민자호텔인 사보이호텔을 중심으로 이권을 챙기던 중이었는데,
당시 박정희 치하에서 차별의식을 느낀 호남주먹세력의 대부인 YE 파의
두목 J씨가 75년 기습적으로 S씨일파를 제압하였다. 이때 S씨등은 많이 다쳐
우리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고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P신경외과과장을 은인으로 삼고 호형호제 하면서 병원을 드나들었다.

S씨는 키가 6척장신이었고 늘 미소를 머금은 호인이었다. 그 부하들이
과잉충성한 것이 문제의 사건을 만든 것이었다. S씨 이후의 한국 조폭세계는
주로 호남파 (J씨,K씨,L씨)와 부산의 칠성이파(L씨)가 주도하였다는데
예전의 명분과 대의를 중요시 하는 낭만적조직이 아니라 회칼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깡패화하였다고들 보고있고, 최근에는 젊은 조폭들의 수많은
소규모조직에 의해 기업화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 용팔이사건, 슬롯머신사건,등으로
정치세계에도 깊숙히 관여했던 조폭세력은 양은이파와 태촌파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역사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 의사들의 주위에는 이런 조직들의
사람들도 없을 수 없다. 그들 역시 환자이기 때문이다. 단, 조금 위험한 환자임을
지난 병동폭력사건에서 나는 일찌기 감지하고 있다. 당시의 그 L 선생은 오늘날
비타민박사로도 세인의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제 다 지나간 추억속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