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작은 유리병 속에는 콩알만한 돌맹이가 들어있다.
결석(stone)이다. 친구의 소변을 통해서 받은 딱딱한 요로결석이다.
이전에 의국 내 책상 위에는 많은 종류의 돌 (담석, gallstones)들이 놓여있었다.
담석은 주로 쓸개 속에 염증이나 고콜레스테롤혈증의 병발증으로 생기는 것인데,
과거 60~70년대에는 간속에도 흔히 돌이 생겨 (이것을 간내결석, intrahepatic stone,이라고
부름) 고열과 황달등의 증상으로 외과에서 수술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간내결석은 대개 간의 우측 뒷부분에 박혀서 좁은 담도 속에 꿈쩍도 않고
반복되는 염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당시로는 큰 수술인 간절제를 하였다.
우리 백병원에서는 당시 일본에서 선구적으로 시행했던 간부분절제 및
간담도십이지장간문합술이라는 거창한 수술을 하여 1984년 외과학회에 필자가
직접 40여례에 달하는 수술례를 발표하였는데, 그 때엔 국내 최초의 수술이었고,
훗날 이 공로로 우리 병원은 수상까지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수술을 하고 나면 그 수술의 결과, 즉 병이 완치가 되었는지, 아니면
재발하였는지, 아니면 딴 병원등에서 재수술을 하였는지 추적검사 (follow-up study)를
해야 학회에 발표할 수 있는데, 의국의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필자는 누구의 도움없이
전적으로 필자의 신발에 의지하여 직접 42례의 환자를 주소만 가지고 일일이 방문하여
조사하였다. 하루 1건 조사하기도 무척 힘들었다. 대개 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위생상태가 불량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차트에 기록된 주소지로
찾아가보면 대개는 이사를 가, 다시 동사무소에서 새주소를 찾아 일일이 방문하여야 했다.

하루는 유명한 달동네를 찾았다. 원주소는 동네 입구의 집이었으나 주소가 두세번
바뀌면서 점점 동네위로 이사를 갔는데, 점점 사는 환경이 열악하여, 마지막 주소에 가니
그야말로 판잣집에 누추하기 그지 없었다. 환자는 없고 딸이 대신 나왔고 나의 묻는 질문에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알고보니 수년 전에 간내결석증이 재발하여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던 것이다. 오랜 병치료로 가세는 급격히 기울고 남은 가족들은 단칸방의 달동네
꼭대기까지 밀려난 것이었다. 나는 이런 경우를 여러번 보았는데 그럴 때 마다 괜한
추적검사를 하는구나 하고 몇번이나 이 못할 짓(?)을 그만둘 까 하고 망설였다.

사실 그 당시 간내결석증은 난치병이었고 대개 병원을 찾을 때에는 이미 담도가 많이
상하여 일부에서는 간담도암으로 까지 진행되기도 했다. 워낙 가난한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병이고 한번 수술하여 입원치료하면 집한채가 넘어가는 식이었다.
요즈음 같으면 건강보험으로 본인부담이 많이 줄었으나 당시로는 그 때의 경제사정으로
보면 의료비는 엄청난 부담이었던 게 사실이다. 제법 큰 집에 살던 사람도 두, 세번 입원하고
나면 결국 전세나 삭월세방으로 전전하기 일수 였던 것이다.

나는 치료하는 의사의 입장이지만 막상 환자의 처지를 보면 정말 가슴 아픈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이 우리 60~70년대 와 비슷하다고 한다.
전국민 중 무려 4,000 만명이 보험에 들어있지 않아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이 공약으로 의료보험개혁을 하겠다고 하여 당선은 되었으나
막상 개혁을 해 보려니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 들린다. 한국의 건강보험을 모델로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만들고 싶어하는 모양인데 어쩐일인지 국민들이 반대한다고 한다.
한국의료가 미국민들에게는 그다지 탐탁지 않다고 한단다. 사실 우리 의사들도 한국제도에
불만이 많고 많은 기본중요과목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등)은 지원자가
거의 전무하여 앞으로 한국의료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요즈음은 간내결석보다는 쓸개에 콜레스테롤 성분의 담석증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고지혈증등이 원인이다. 대개 담석증은 크기가 작고 증상이 없으면 굳이 수술하거나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 단, 너무 커서 통증이 오거나 담낭염등이 생기면 복강경으로
쉽게 수술 (담낭절제술)을 할 수 있다.

그 옛날 토큰 몇개를 들고 동네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신발이 다 닳도록 수술후
추적검사를 하던 시절을 오늘 되돌아 봤다. 나는 그 때의 그 산 경험을 늘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그들의 삶을 잊어서는 않되리라. 내가 지켜야 할 나의 영원한
환자들이 아닌가....나의 동반자들이기도 하고...나는 항상 환자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조금이라도 주머니를 가볍게 하려고 애쓴다. 단지 환자들이 나의 이런 마음 씀씀이를
잘 모르거나 오히려 오해하는 적이 많아 가슴 아프고 답답할 때가 많다.
언제 환자들이 나의 진심을 헤아려 줄런지...
사실 나는 영원히 그것을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직 하느님만이 나의 진심을 꿰뚫고 미소지으며 하늘에서 쳐다 보리라...라고
나는 내심 늘 이와같이 스스로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