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격 실시된 의료보험은 2000년에 접어들어 혁신적 시스템,
즉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고 오랫동안 투약봉투에 문귀를
넣어온 약사들의 뜻에 따라 의약분업을 시행하였다. 그동안 병원에서 직접
처방조제하던 방식을 버리고 주사를 제외하고 입원환자가 아닌 경우는
특별한 지역 (의약분업예외 지역, 주로 시골) 이외에는 전국적으로 약조제는
오직 약국에서만 가능하도록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다.

당시 의사들은 약조제를 오랜동안 해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 제도를
시행하는 것을 적극 반대하였다. 대신 약사회는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의쟁투(의권쟁취투쟁)란 격렬한 용어가 의사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 그 해였다.
의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나와 정부의 강제적인 의약분업시행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의료수가가 원가에 80%도 채 되지 않은 열악한
의료여건에서 그나마 약조제를 통해 일정액을 보충해오던 의사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때 대통령이 DJ였고 소문에 의하면 DJ 역시 의약분업을
강행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마지노선에 도달한 이 제도는 마지막 당시
야당총재였던 이회창 현대표와 DJ간의 토요일 담판으로 결정될 판이었다.
이에 필자는 이회창총재와 아주 가까이서 의정활동을 하던 E의원을 통해 적극
막아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당시 DJ와 독대한 의협회장(김재정)의
실수인지 또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의약분업 찬성 쪽으로 유턴하고 그해 8월부터
험란한 의약분업은 강행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은 어느모로 보나 의약분업은 시기상조였다.
원래 의원 2~3개당 약국 1개의 구조가 의약분업에 좋은데 우리나라는 약국수와
병원수가 비슷하다고 한다. 약국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턱없이 많은 조제료를
주지 않을 수 없고 결국 2003년 이원형의원(한나라당)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민의 88%가 의약분업을 반대하고 3년간 무려 7조8,000억원에 달하는 돈이
조제료로 추가 지불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지금도 의료비중, 약값으로 지불되는 돈이
연간 9조 가까이 되는데 순수 조제료가 이 중 2~3조원을 차지한다.
이돈은 의약분업시행 전에는 지불되지 않던 돈이고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돈인 셈이다. 자연 의료보험료가 매년 엄청나게 증가할 수 밖에 없고
국민들은 불편하고 돈만 많이 들어가는 이 제도를 좋아할 리 없다.

2000년 정부는 의사들에게 의약분업을 동참해주기를 원하는 뜻에서 약으로부터
얻어왔던 수익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외래진료비를 무려 30% 이상 인상하였는데,
바로 이듬해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하여 소위 "재정안정대책"이란 것을 내세워
올려 주었던 의료비를 죄다 뺏어가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자행, 초진료가
12,000원 (본인부담 3,600원) 하던것이 7,400원으로 무려 40%나 삭감되었고
결국 이 일로 김재정 당시 의협회장은 빗발치는 의사들의 항의에 못 견디어
1년여의 임기를 남기고 도중하차 하였다. 결국 현 국회의원인 신상진회장이
새로이 의협의 수장이 되어, 전국적으로 의사들의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다시
벌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2009년 현재도 초진료는 11,000원대로 2,000년의 수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본이나 외국은 한국 2~10배 수준)

이런저런 이유로 요즈음 의사들은 정부 (특히 보건복지부)가 하는 일에는 거의
모두 반대하고 있다.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라고 보면 정확하다.
사실 복지부의 핵심 간부들이 의사들에서 약사들로 바뀐지 오래 되었고,
그래서 우리나라 복지행정은 약사행정이란 말이 나올 정도임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리고 간호사나 비의료인, 정치인들이 복지부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이 이제는 관례화 된 것 같다. 적어도 의료를 잘 아는 의료인들,
특히 의사나 의학자출신들이 복지행정을 맡는 것이 순리인 것 같으나
왠지 의사와 복지부는 서로 어르렁대며 적대시하는 풍조가 오늘날의 일반화된
분위기로 보면 틀림없으니 참 딱한 일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전세계에 유래가 없는 초고속 노령화사회로 접어들 것이고
의료와 복지 문제는 갈수록 중요한 사회문제로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인데,
그 대책은 확실한 것이 없어 보인다. 지금과 같은 전국민보험, 모든 국민이
완전하게 복지혜택을 받는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텐데
과연 누가 이 돈을 낼 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복지부의 고민도 이제 해가 지날수록 점점 많아질 것이다. 별 대책이 없어보이기도 하다.
그냥 지켜 보는 수 밖에 우리 의사들도 별 방안이 없다고 보는데 이제 우리 의사들이
해 줄 일이란 게 별로 없어서 그게 걱정이다.  너무 앞으로 가버렸다.
한국의료는 이제 의사손에서 멀리 사라져 버렸다고 보면 틀림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