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전 일이다.한참 진료중인 낮시간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 40대후반의 환자가 진료실을
박차고 들어왔다.가슴이 심하게 아프다면서,흉통의 고통을 털어놓고 있었다.
'MI'(심근경색증)겠구나고 직감은 나는 바로 심전도를 해봤다.틀림없었다.환자를 앞에다 불러
놓고 나는 다짐을 시켰다.."지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살 수 있어요.바로 이 진료의뢰서 들고
K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받으세요.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어요.알았죠.

바로 택시 불러다 최대한 빨리..."그리고는 한 달여나 지났을까, 그 환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진료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혈색이 좋았다. 약간 수척해진 것만 빼놓고는 전과 비슷했다.
그런데 환자는 그 날일을 무슨 다큐멘터리처럼 시간별,날짜별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낱낱이
털어놓았다."원장님,시키는대로 바로 응급실에 가니까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하더니 나를 바로
2층 중환자실로 데려갔어요.가슴은 계속 아파오고,침대에 눕자말자 심전도인지 뭔지하는 것을
주렁주렁 달았고 눈앞에 화면이 나타나는데,삐이삐이하면서 심장 뛰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그 삐 하는 것이 그만 같은 소리로 삐-하면서 일직선이 되고 갑자기 정신이
몽롱하면서 그 다음에는 기억이 안나는데...한참 뒤에 깨어보니 그 화면에 다시 삐이삐이 하면서
뚝딱뚝딱 뛰는게 보였어요.아마 심장이 멎었다가 다시 소생술로 뛰게된 것 같아요
(이때 환자는 무슨 남의 일처럼 이야기한다.좀 웃어가면서...).....아이구, 죽다가 살아난 거예요.
원장님,덕에 제가 죽는 것을 직접 보질 않았겠어요. 하하하..." 하는 게 아닌가...무슨 영웅담 같은
소리를 30분이 넘게,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원래 이 환자는 택시기사인데,오랜시간 비만관리,혈압관리등을 소홀히 하여 심장의 관상동맥이
좁아진 것을 몰랐 던 것이었고 그 날 갑자기 흉통이 생겨 가까운 우리 병원에 들렀다가 다행히도
원장의 말을 잘 듣고 따라주어서서(착한 환자는 원장 말을 잘 듣지요...) 천금같은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가끔 들러서 고지혈증과 고혈압에 관한 치료를 대학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한다는 주기적인 신고(?)를 보고삼아 하면서 올 때마다 그 날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전설처럼
주절주절 쏟고 가곤한다.

그 때가 벌써 10수년도 전의 일이니 지금 그 환자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그 날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만약 이 환자가 다른 병원에 들렀다면 어땠을까? 이 환자가 혹여라도
나의 간곡한 지시를 거부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만약 대학병원 응급실의사들이 나의 심전도 소견이
적힌 의뢰서를 100% 믿지 않고 쓸데없이 진단하느라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였다면 그 환자는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었을까?....하고 나는 가끔 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천만 다행이다.

이거야말로 하나하나 모두 하느님이 도와서 척척 움직여 주었기 때문에 그 환자를 살렸을 것이다"
라고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을 되 돌아 본다.천우신조란게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