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도 일반 사람처럼 똑같이 병에 걸린다. 감기도 걸리고 설사도 하고
두통도 있으며 불안하거나 우울증도 겪는다. 그리고 암에도 걸린다.

오히려 진료에 쫓기다 보면 일반 환자들보다 암을 발견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부지런히 건강검진을 스스로 알아서
제때 받아 보지 않으면 간혹 암이 진행되어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전 중앙대의무부총장에 취임한 H전 서울삼성병원원장이  우연히 췌장암을
발견하여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경찰병원장, 성균관대부속삼성병원장등을 역임하면서
일에 쫓겨 검진시기를 놓쳤던지, 다시 중앙대병원의료원장에 취임하면서 체크해 본
초음파에서 암이 발견된 모양이다. 그러나 H원장은 스포츠의학의 거두에 걸맞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병원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도록 격려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교시절 같이 공부했던 한해 선배인 L외과과장은 암을 앓으면서 수술하는 의사로
언론에 널리 알려졌다. 유방암을 전공한 L선배는 암치료 중에도 열심히 수술하였다고 한다.
대장암이 4기라면 이미 간이나 주위에 전이되어 생존이 쉽지 않는데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암을 마치 "내가 주인인 집에 잘못 세든 세입자"로 간주, 결코 내집을 빼앗도록 허락치
않는다는 신념으로 평소 하던 진료업무를 그대로 소화하면서 치료 받았단다.
2006년 이후에는 대장암이 재발되지 않고 있다는데,쾌유를 기원한다.

내 주위에는 유명한 의사 암환자가 많다.

강남구에서 같이 활동한 H산부인과의사와 C산부인과의사가 그 예다.
H원장은 2001년 대장암과 신장암을 동시에 발견하여 모두 수술로
완치하였고, C원장은 내가 개업하고 있던 병원 인근에서 진료를 했는데,
유방암이 발견되어 1999년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아예 종교활동에
깊이 빠지기도 했는데, 늘 의료봉사를 생활화하고 지냈다.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H원장과 G원장은 둘다 유명한 서울대학교
방사선과(영상의학과)와 내과전문의로, H원장은 세계적인 방사선과의사로
유명했고 G원장은 김영삼대통령주치의로도 활약 했었다.
이 두 분들의 공통점은 암에 대한 철저한 공부를 통해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암치료에 임했고, 조금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며,
하던 일들을 그대로 계속하는 등 암환자 같은 모습을 전혀 내보이지 않은
점들이라고 할 것이다. 심지어는 암을 관조하고 암의 재발도 두려워 하지
않으며 암에 걸린 것을 무슨 남의 일처럼 자연스럽게 대했다.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생활습관과 식생활을 개선하고,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또 다른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고,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로 치료에
임한 것이 공통적인 특징들이다. G원장은 무려 3번의 암치료에 성공하여
의사로서 성공하였으며 필자의 고교선배이기도 하고 그 아들은 강남구에서
필자와 같이 개업을 하고 의사회에서도 얼굴을 맞대어 활동하기도 했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병마와 싸우느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사들 중에 특히 외과계 의사들은 보통 사람들 보다 2~3배의 힘든 노동을
한다고 본다. 하루에 3~4건의 수술도 예사고 밤 늦게 응급수술을 하거나
심지어는 10시간 또는 20시간의 장시간 수술도 드물지 않게 한다.
따라서 스스로의 건강을 챙길 시간과 여유가 없다. 자연 온갖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 의사들, 특히 외과계의사들이다. 그리고 이같이 일에 쫓기다
보니 암을 발견해도 초기에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에 의사들 스스로
조기발견을 위하여 자체적으로 건강검진에 관심을 가지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외국에 비해 한국이 의료비가 싼 까닭에 한국의사들이 외국의사들에
비해 더 많은 노동에 노출되어 있고 건강에 좋지 않은 술담배를 가까이 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오래전부터 "일반인 보다 의사들의 건강이 더 위험하다"는
걱정스런 염려가 이곳저곳에서 알게 모르게 흘러 나오고 있다.
건강해야 할 의사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있는 셈이다. 한국의 의사들은
상당수가 중환에 걸려 있다. 40대 의사들의 절반 가까이가 비만에 걸려있고
50대 이후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등의 성인병 한두가지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료의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필자도 일주일에 무려 65시간 이상을 진료라는 노동에 투자 하고 있는데,
거의 살인적인 중노동일 것이다. 그래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고된 노동을 피하려면 고수익이 보장되는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치과등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과도 이제 과포화되어 옛날 같지가 않다고 한다.

이제 정부에서도 의사들의 복지를 위하여 적극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본다.
한국의 의료의 근간이 되는 외과, 산부인과는 지금 거의 고사직전이다.
지난 달 외과 개원의협의회가 결국 문을 닫았다. 세미나를 열어도 참석하는
외과의사가 예전의 20%도 되지 않아 운영이 어려워서 수십년 된 외과개원의의
고향이며 친정인 협회가 영영 사라진 것이다. 이제 외과의사는 대학병원에서나
찾을 수 밖에 없는데, 대학병원에서도 젊은 의사들의 지원이 없어 외과의사들 평
균연령이 50~60세로 고령화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 10년 이내에 한국에서 외과의사를 찾을 수 없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정부가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